직장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회의'라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직장생활을 할 때에는 업무 특성상 회의에 참석할 일이 꽤 많았습니다. 회의를 진행하다보면, 내 일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부서의 사람들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각자의 민감한 지적과 안건들이 등장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저 나름대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안건이라 내 욕심대로 진행하고 싶기도 하지만,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어떻게 나눠서 진행을 할 것이며, 또 누가 얼마만큼 책임을 질 것이고, 얼마만큼 시간과 노력을 들일 것인지를 두고 그렇게 치열한 회의가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럴 땐 정말 난감했습니다.
그런데 가장 난감한 순간은,
정작 회의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때입니다.
■ 사소함의 법칙이란?
영국의 한 역사학자인 '시릴 파킨슨(Cyril Parkinson)'이 남긴 많은 법칙 중 하나가 바로 '파킨슨의 사소함의 법칙(Parkinson’s law of triviality)' 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회의를 진행할 안건을 다루는 데 들이는 시간은 그 안건의 중요성에 반비례한다'는 내용입니다.
'시릴 파킨슨'은 평소 아주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는 영국의 역사학자이면서도 뛰어난 유머/풍자/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부조리한 현상을 지적하곤 했다는데요.
■ 재미난 이야기1
파킨슨이 예로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한 기업 회의에서 새 공장을 지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결정하는 대화를 진행중이었습니다. 이 회사에서는 1억 파운드가 넘는 비용이 드는 공장을 신축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는데, 별다른 반박이나 의견 없이 불과 15분만에 신축을 하는 것으로 결정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다음 안건은, 본부 건물 앞에 직원용 자전거 거치대를 세우느냐 마느냐를 놓고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 안건에 소요되는 비용은 3,500 파운드에 불과했습니다. 앞의 안건에 비해 아주 사소한 안건임에도 불구하고 임원들은 이에 대해 1시간이 넘도록 격론을 벌였꼬, 비용뿐만 아니라 거치대의 재료에 대해서까지 논쟁이 이어졌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이, 중요한 일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넘어가면서, 비교적 너무 사소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침을 튀겨가면서까지 논란을 벌이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파킨슨은 '사소함의 법칙'이라며 풍자한 겁니다.
■ 재미난 이야기2
사실 이러한 아이러니한 현상은 회의 석상에 국한되는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하나 더 하자면, 저명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폴 헤닝 캠프(Poul-Henning Kamp)'는 '초록 잔디 위의 자전거 거치대'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중요 내용은, 초록 잔디 위에 어떤 색깔의 자전거 거치대를 세워놓는다고 한들 예쁘지 않겠냐는 것이었는데요. 당시 FreeBSD라는 오픈소스 운영체계 개발 계획을 놓고 프로그래머들이 사소한 것에 집착하게 되면서 정작 중요한 일에 진전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을 개탄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에 투자해야 할 귀한 재능을, 별로 상관도 없는 일에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게 되는 것은 효율을 최우선으로 하는 프로그래머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던 걸 보면 사람은 다 어쩔 수 없이 똑같은가 봅니다.
■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날까?
앞서 예로 들었던 파킨슨의 이야기1을 보면, 신축 공장을 지을지 말지 하는 문제는 너무나 어렵고 복잡한 문제였기 때문에 회의에 참석한 임원들도 이 안건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잘 모릅니다. 다들 해당 분야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함부로 의견을 제시할 수 없었을 것이고 전문가의 설명을 듣고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완벽히 이해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괜히 뒷감당 하지 못할 의견을 내는 건 오히려 현명하지 못하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나마 관련 내용을 조금이라도 잘 아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결정을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이에 비해서, 자전거 거치대 설치에 관련해서는 누구나 쉽게 접근하여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비록 전문가가 아니라 하더라도 합리적인 의견을 제시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을 할 겁니다. 그래서 회의가 오래 걸리고 서로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어려워지는 겁니다.
■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보면
회의 자리가 아닐 때도 상황은 비슷할 것입니다. 어렵고 복잡하고 부담스러운 과제는 그 누구도 쉽게 건들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어려운 과제 사이사이에 비교적 쉬운 과제가 끼어 있으면, 사람들은 이것부터 먼저 해결하려고 하게 됩니다. 게다가 쉬운 과제들이 일단 해결되어야 어려운 과제를 건드릴 준비 작업이 완료된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시간과 자원이라는 건 제한되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다 보면 가용해버린 자원은 결국에는 고갈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회의 자리에서 의장이거나 아니면 어떤 단체의 리더라면, 사람들의 이러한 기본적인 성향을 감안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하고 무엇이 충분히 논의가 돼야 하는지, 그 상황에서 이야기의 초점이 흐려지지 않도록 이끌어나가는 능력과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단체뿐만 아니라, 개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항상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색색이 예쁜 펜으로 교재에 줄을 긋고 별표 표시를 그리기 바쁜 법입니다. 결국 우리가 사소한 일에 굳이 매달리게 되면서 중요한 큰 과제를 자꾸 뒤로 미루는 건, 인간 심리의 작동방식이 그래서가 아니라, 그만큼 판단력 / 결단력 /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일 겁니다.
[주 내용 출처 -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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