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사람이 오히려 편한 이유
여러분 주위에는 어떤 동료들이 계시나요? 속내를 터놓을 만한 친구나 동료들이 있으신가요? 수십 년 동안 또는 수 년간 얼굴을 맞대고 지내온 다양한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적당히 가까운 동료나 지인들도 있을 것이고, 부인이나 남편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무슨 심보인지, 먼 길 가는 기차 안에서 우연히 옆 자리에 앉은 낯선 이방인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은 쓸쓸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런 심리를 심리학적 용어로 '기차에서 만난 이방인 현상(Stranger on a train phenomenon)'이라고 합니다.
■ 왜 그럴까?
너무 친밀한 사람들에게는 바로 그 '친밀하다'는 이유 때문에 오히려 더 하기 힘든 말들이 생긴다고 이야기합니다. 너무 친밀한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들의 마음에 괜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서, 또는 내 비밀을 드러내게 되면 혹여나 내가 내 체면을 구기게 될까 봐 오히려 말을 더욱 더 조심하게 된다는 겁니다.
오히려 다시 만날 일이 없는 사람이거나, 자신이 속한 어떤 네트워크의 일원이 아니라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더 마음 속 깊은 얘기를 하기가 더 쉬울 때가 있습니다.
사회심리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친밀한 사람들과의 가까운 인적 네트워크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닥 친하지 않더라도 조금은 느슨하고 확장되어 있는 네트워크 역시 인간의 심리적인 건강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이런 존재를 보고 '중요한 이방인(Consequential stranger)'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 이러한 심리를 볼 수 있는 사례
이런 현상은 평생 동안 '사랑'이라는 현상을 심리학적으로 연구해 온 미국의 심리학자 직 루빈(Zick Rubin)이라는 사람에 의해 정의된 심리적 현상입니다. 루빈은 1975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전혀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고 싶어하는 심리에 대해서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내 과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며, 앞으로도 모를 사람에게 나의 비밀과 깊은 고민을 털어놓는 것. 이런 심리는 어떤 면에서 보면 해답이나 조언을 구하려고 털어놓는 게 아니라 일종의 '독백'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마치 유명한 이야기에서 나오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모자장이가 외쳤던 심리와 비슷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 언젠가 신문에 실렸던 이야기 입니다. 서울 강남에 문을 열었던 '대화방'에 대한 짧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정확히 어떤 업소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쓰여진 기사 내용에 의하면, 중년의 기러기 아빠나 이혼한 싱글 남성들이 꽤 많이 이 대화방에 와서는 처음보는 사람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고는 돌아갔다고 합니다. 왜 이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가서 굳이 돈을 내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을까요? 아무리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 산다고 해도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형제나 동료들도 있을텐데 말입니다.
■ 이방인을 기다리는 사람들
매일 아침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두 번씩만 인사를 주고받는 경비 아저씨와 청소 아주머니, 종종 가는 미용실의 디자이너, 헬스장에서 가끔 만나는 동료, 자주 가는 카페의 직원 등. 언뜻 보면 나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처럼 생각되지만 묘한 애착관계에 놓여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느슨한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연결고리가 생기기도 하고, 뜻밖의 새로운 정보를 얻기도 합니다. 또 어쩌다 보면 인생의 고비에서 비탄에 빠져 있는 나에게 뜻밖의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줄 수도 있습니다.
이런 느슨한 네트워크에 대한 욕구는 온라인을 통해서 광범위하게 인간관계를 확산시킬 수 있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채팅방에서 예상치 못하게 깊이 있는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어느 순간 서로의 실체도 모르는 채 로그아웃 해버리게 되는 상황을 보면 그렇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람들의 심리를 보면 어이없고 황당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아프고 쓰라렸던 이야기를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르고 그 사람 또한 내가 누군지 잘 모르는 어떤 보호막이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했으면 하는 그 보호막 뒤에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은 새로운 구원자를 기다리며, 기차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이방인을 기다리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주 내용 출처 - 사람을 움직이는 100가지 심리법칙, 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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